미래로 보는 세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붕괴

작성자
세계미래포럼
작성일
2019-11-04 14:59
조회
254
글쓴이 : 이영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붕괴


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20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꽃을 피웠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이 이념이고 자본주의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기조로 한다. 2차 대전을 승전으로 마무리한 미국은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앞세워 세계경제의 발전을 주도하였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함께 꽃을 피워나갔다. 결국 미소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가 해체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고 중국이 개혁개방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이 단기간 내에 세계 제2, 제3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지금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변모한 것도 이와 같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적인 조류를 잘 이용한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민주주의는 1인1표로서 평등이 목표다.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에 불구하고 모두가 동등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1원1표로서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이윤 극대화가 지상의 목표이다. 주총의 의결권은 보유 지분에 따라 다르다. 이 두 제도를 두고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으로서 전자는 ‘절제’를, 후자는 ‘욕망’을 전제로 한다고도 한다. 때문에 양자가 상호 보완적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긴장과 대립의 관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누가 선행하고 누가 뒤따라오느냐는 점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마치 자라온 배경이 다른 커플이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때는 좋은 부부이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나쁜 부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만사 변하지 않는 게 없다고 했던가.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근래에 일어난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 당일까지도 세계의 증권 외환시장은 영국의 EU 잔류에 베팅하였다. 미국의 지식인이나 매스컴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투표 전날까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를 가장 앞서가는 두 나라의 분노한 대중은 엘리트들의 예측을 비웃듯, 반 자유무역과 반 이민 깃발에 표를 몰아주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을 깨고 이렇게 엉뚱한 현상을 낳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스스로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다. 무슨 말인가? 양 제도가 나은 부작용이 갈수록 불어난 게 문제의 근원이다. 양 제도 하에서 세상이 잘 돌아갈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로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커지고 확산되자 많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부작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불평등의 확대이다. 거기다가 가진 자와 지도층의 위선과 오만이 가세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사실 시장경제의 확산과 자유무역의 확대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개발도상국들을 들뜨게 하였다. 그러나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였다. 고삐 풀린 세계화는 마침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였고 나아가 불평등의 확대를 초래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이런 현상이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상류층의 소득은 크게 늘어난 반면 중하위계층의 소득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결국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소외된 대중은 숫자의 힘으로 세계화에 역습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되풀이되는 기득권층의 비리와 탈법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뿜어 나오는 이른바 분노의 정치가 그 영역을 넓혀가게 된 것이다.

앞으로 미국 정치는 공화당 대 민주당 또는 보수와 진보 간의 대결이 아니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결이라고 한다. 이제 American Dream은 사라졌고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시적인 현상인가, 구조적인 현상인가? 일시적이라면 되돌릴 수 있을 것이고, 구조적이라면 치유가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유감이지만 후자의 입장에 서고 싶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부작용이 잘 관리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과거처럼 다시 활력을 되찾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20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찬란하게 꽃피웠던 신자유주의 문명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마치 1990년대 들어 공산주의가 붕괴한 것처럼 말이다.

일찍이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 영국)는 모든 문명은 발생, 성장, 몰락, 해체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문명은 외부로부터의 작용보다는 항상 그 자신의 결함과 실패에 의해 파산한다고 하였다. 최근 들어 국내외전문가들이 세계경제의 대공황 가능성을 자꾸 언급하고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무역 분쟁, 나아가 패권 다툼도 심상치 않다. 2008년 금융위기는 소위 양적완화를 통해 해결하였지만 이번에 닥치는 금융 경제 위기는 정부 정책으로 막을 수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패권국가가 바뀔 때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는 말도 귀에 거슬린다. 거기다가 이제 곧 200년 대의민주주의의 역사가 끝나고 직접민주주의가 온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회자되어 왔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정말 그럴 것 같다. 1960년대 이후 미국 발 신자유주의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은 우리로서는 누구보다 걱정이 많다. 이런 와중에도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세계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붕괴까지 언급하면서도 그 이후의 세계는 지금보다 월등한 사회시스템을 갖출 것이고, 그 결과 세계는 다시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려받은 가난을 몰아냈다고 만족해 할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변화가 초라해 보일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적으로 대단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경우보다도 거대한 변화를 직접 보고 겪을 것이다. 그렇다고 겁만 먹고 있을 일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클수록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도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확실한 교훈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미래공부에 좀 더 매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는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는 우리가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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